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 주어의 성격과 동사가 일치하지도 않은 이런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물어본다. “무슨 내용이에요?”라고. 그럼 나는 또 얼른 대답을 못한다. 우선은 “운동화 한 켤레가 우리 소비자 손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다큐멘터리입니다.”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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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투리와, 번역자가 힘들어한 키나발루산 주변 원주민의 사투리와, 번역자를 찾기도 힘들었던 슬로바키아어와, 미얀마인들이 쓰는 영어로 전해지는 노동자들의 ‘생활’을 온전히 담고 싶었다.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삶을. 그것이 지금 단계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이 정의는 그대로 글쓰기의 한 장르로서 논픽션에도 해당할 것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이러한 정의가 적용된 논픽션의 고전이다.

“25만명의 광부가 실업을 당한다고 할 때, 뉴캐슬 뒷골목에 사는 광부 앨프 스미스라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일종의 순리라고 할 수 있다. 앨프 스미스는 단지 25만이라는 숫자 가운데 하나, 말하자면 하나의 통계 단위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하나의 통계 단위로 보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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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단순히 광부들의 열악한 삶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 외에, 서로 다른 세계에서는 언어도 달라진다는 점을 알아차리는 섬세한 감각까지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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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웰이 살던 시대, 그가 살아온 삶의 경험에서 그 ‘언어의 다름’은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그는 제국의 공무원으로 식민지에 파견되었던 사람이었다. 버마에서, 그리고 파리와 런던의 슬럼 지역에서 서로 다른 언어들이 마주칠 때, 그것들은 동등하지 않았다. 제국의 언어가 식민지의 언어에 비해, 그리고 가진 자의 언어가 빈민의 언어에 비해 압도적으로 ‘옳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때 언어는 힘의 관계를 그대로 담고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 관계란 또, 그대로 식민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삶의 경험이 놓여 있는 관계이기도 했다. 오웰은 그 관계를 바닥까지 경험한 후에, 정말 어느 쪽이 옳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그의 모든 글쓰기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그 관계를 뒤집고 싶었다. ‘옳다’고 말해지는 세계가 옳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내가 느낀 죄책감은 너무 엄청나서 속죄를 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을 5년 동안이나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번민 끝에 결국 얻은 결론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었다. 잘못된 이론일지 모르나 압제자가 되어 본 사람으로 얻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는 것, 그 세계에서는 같은 언어가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깨닫는 것, 그런 까닭에 타인과 나를 함부로 묶어서 ‘우리’라고 칭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 이 모든 깨달음은 왜 가치가 있는 걸까? 그 깨달음이 오웰을 전사로 만들었다.

190205 <컨테이너선에서의 만남>, 김현우 / 릿터 15호: 연애소설